중국의 제3세계로 적극적인 진출
<한겨레> 취재진이 아프리카 시골 마을에 가면 난생 처음 동양인을 보는 어린이들이 몰려들어 “시나”(중국인)라고 외치곤 했다. 60·70년대 일본이 부상할 때 유럽이나 미국 사람들이 동양인을 보면 으레 일본 사람인지를 묻던 것처럼, 요즘 아프리카에서는 ‘동양인=중국인’이라는 등식이 굳어져 있다.
자원 놓고 미와 패권다툼…현지 노동력 안써 불만도
아프리카 나라들의 주요 산업 기반은 대부분 ‘중국제’다. 대표적 사례가 수단이다. 수단은 산유국이면서도 정유시설이 변변찮아 오랫동안 정유된 석유를 수입해왔다. 수단을 본격적인 석유 수출국으로 부상하게 만든 1등 공신이 하르툼 정유공장이다. 이 정유공장은 해마다 10% 대에 이르는 고도 성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남아공과 이집트 사이에 있는 유일한 정유공장인 이 공장은 중국국영석유회사(CNPC)와 수단 광업에너지부가 합작해 2000년에 완공했다. 정유 규모가 연간 250만톤이며, 항공기용 제트 에이(A)유, 중유, 엘피지도 생산한다. 이 공장 가동에 필요한 기술은 모두 중국이 제공한 것이며, 기술자들도 대부분 중국인이다. 수단의 수도 하르툼은 온 시내가 중국판이다. 하르툼에서 만난 한 수단인은 “서구와 달리 중국은 정치에 간섭하지 않고, 비즈니스를 안다”고 말했다.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은 1950∼60년대부터 시작됐다. 제3세계 외교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다. 중국은 아프리카의 전통적 우방으로 70년대부터 꾸준히 무상 원조 공세를 폈다. 아프리카 전역에서 중국이 건설한 관공서 건물, 체육관, 병원, 도로, 주택, 학교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쌓은 신뢰가 중국의 본격적 해외 진출에 윤활유로 작용한다. 아프리카 진출에서 중국은 서방 국가들보다 휠씬 유리하다. 아프리카인들은 과거 식민지배의 기억으로 유럽이나 미국의 백인들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 반면, 중국에 대해서는 50·60년대 비동맹 운동을 함께 했고, 독립 투쟁을 도와준 우호국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무비아이 응카샤마 콩고 대통령 에너지·광업 담당수석비서관은 “유럽 사람들은 아프리카를 속여왔다”고 말했다.